한 사람의 마지막 길, 끝까지 함께 걸었습니다
故 유재필(Jaepil Geoffrey You, 1970~2026) 형제 이야기
서울역 광장에서 발견된 미국 시민권자 한 분이 있었습니다.
2024년 12월의 첫 만남부터 2026년 2월의 마지막 숨까지, 헤세드와 윤진수 목사님이 함께 걸은 1년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 거리에서 식구가 된 사람
서울역 광장은 오랫동안 그의 집이었습니다.
1970년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 시민이 된 그는, 사업 실패 이후 2017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혼한 아내, 오래전 연락이 끊긴 아들. 한국에도 미국에도 그를 기다리는 가족은 없었습니다.
2022년 8월, 여권의 체류 기간이 만료되었고 그는 미등록 외국인이 되었습니다. 건강보험도, 갈 곳도 없었습니다.
그가 발견된 곳은 서울역 컵밥 나눔 자리였습니다.
■ 헤세드, 그리고 한 목사님
사회복지법인 헤세드는 매일 새벽 6시 30분 따뜻한 밥상을 차리고, 노숙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일터(로로카페)와 머물 곳(헤세드의 집)을 운영합니다.
삼일교회 서울역 사랑나눔부는 이 헤세드 사역에 15년 넘게 함께해온 자원봉사 공동체로, 서울역과 남대문, 쪽방촌에서 발이 되어 손이 되어 동행해 왔습니다.
이 사역을 가장 가까이서 이끌어 온 분이 삼일교회의 윤진수 목사님입니다.
"누군가 다시 일어나려면 가족공동체, 복음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믿고 기다려주는 거예요.
주님이 우리를 믿고 기다려주신 것처럼요."
윤 목사님이 평소 말씀하시던 사역의 마음입니다.
그분에게 노숙인은 '돕는 대상'이 아니라 '식구'였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사람을 잃지 않습니다. 한 번 만난 사람을, 그 사람이 다시 일어설 때까지, 또 일어서지 못해도 끝까지 곁에 둡니다.
2024년 12월의 어느 날, 윤 목사님은 그렇게 그를 처음 만났습니다.
■ "Lord on the Road" 길 위에서 만난 주님
로로카페(LORO CAFE)는 'Lord on the Road', 길 위의 예수님이라는 뜻입니다.
노숙인들이 다시 일터에 설 수 있도록 사회복지법인 헤세드가 운영하는 자활 카페입니다. 2021년 10월 문을 열어, 한 사람 한 사람이 다시 사회로 돌아가는 길을 열고 있습니다.
윤 목사님은 그를 로로카페로 이끌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앞치마를 둘렀습니다. 커피를 내리는 법을 배웠고, 손님에게 인사하는 법을 다시 익혔습니다. 잃어버렸던 일상이, 잃어버렸던 존엄이, 천천히 그에게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이름으로 불렀고, 그는 다시 누군가의 '식구'가 되었습니다.
■ 갑자기 찾아온 병
2026년 1월, 그는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순천향대병원에서 받은 진단은 신장암 말기. 손쓸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윤 목사님과 헤세드는 그를 샘물호스피스병원으로 옮겼습니다. 더 이상 치료할 수 없다면, 적어도 그의 마지막 시간만큼은 사람의 곁에서 보낼 수 있도록.
미등록 외국인이라 건강보험도 적용되지 않는 그를, 샘물호스피스병원은 차별 없이 따뜻하게 받아주었습니다. 의료진은 끝까지 그의 통증과 존엄을 함께 지켜주었습니다.
병상에서 그는 분명히 말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의사를 영상으로 남겼습니다. 그가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었던 존엄을, 우리는 지켰습니다.
소천 전, 유재필 형제는 모든 장례 절차를 윤진수 목사님께 위임하셨습니다.
■ 끝까지 곁을 지킨 사람
윤진수 목사님은 한 번도 그의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서울역 차가운 바닥에서 그를 처음 발견한 그 순간부터, 로로카페에서 앞치마를 두른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던 날들, 그리고 호스피스 병상에서 의식이 흐려지는 그의 손을 잡고 함께 찬송을 부르던 시간까지.
미국에서 가족조차 연락이 닿지 않을 때, 그의 곁을 지킨 사람은 윤 목사님이었습니다. 병원비, 행정 절차, 미국 대사관과의 협의, 화장 예약까지. 누구의 책임도 아닐 수 있었던 한 사람의 마지막을, 윤 목사님은 자신의 일로 끌어안았습니다.
"섬기고, 양육하고, 천국까지 동행한다."
윤 목사님이 사역의 마음을 담아 말씀하시던 이 한 문장을, 그분은 유재필 형제에게 그대로 살아내셨습니다.
한 사람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일. 그것이 환대(歡待)였습니다.
■ 2026년 2월 24일 새벽 00시 31분
그는 조용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샘물호스피스병원에서, 사람의 곁에서.
서울역 차가운 콘크리트 위가 아니라, 따뜻한 이불 속에서.
■ 그리고,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부고가 미국에 닿았을 때, 아주 어렸을 적 헤어진 뒤로 아버지를 다시 만난 적 없는 아들은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기억 속에 아버지의 모습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아들에게, 한국에서 마주한 아버지는 낯선 사람이었습니다. 서울역 노숙의 시간, 로로카페에서 앞치마를 두르던 모습, 호스피스 병상에서의 마지막 숨결까지. 아버지의 한국에서의 시간뿐 아니라, 아버지라는 사람 자체가 그에게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습니다.
아들이 한 번도 알지 못했던 아버지를 비로소 알게 해준 사람이 윤진수 목사님이었습니다.
윤 목사님은 아버지의 마지막 시간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증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가장 깊이 이해되는 사람도 윤 목사님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어떻게 발견되었고, 어떻게 다시 일어서려 했고, 마지막에 어떤 마음으로 떠났는지. 그 모든 이야기가 윤 목사님을 통해 아들에게 전해졌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장례의 모든 절차를 걸었습니다. 입관, 추모, 그리고 3월 6일 용인 평온의 숲에서의 화장까지. 아버지를 끝까지 동행한 분과, 한 번도 아버지를 알지 못했던 아들이 같은 길을 함께 걸었습니다.
아들은 처음으로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비록 아버지가 떠난 뒤였지만.
장례를 마친 뒤, 유재필 형제의 한 친족이 사회복지법인 헤세드로 3,000달러를 보내왔습니다. 직접 한국에 오지는 못했지만, 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해준 자리에 자신의 마음도 보태고 싶다는 응답이었습니다.
오래 헤어져 있던 가족의 마음이 아들의 발걸음으로, 한 친족의 후원으로, 윤 목사님의 동행 위에 마지막으로 닿았습니다.
■ 헤세드(חֶסֶד)가 믿는 것
그가 서울역에서 발견되었을 때, 세상은 그를 '미등록 외국인'이라 불렀습니다.
그가 떠난 뒤, 우리는 그를 '유재필 형제'라고 부릅니다.
헤세드(חֶסֶד)는 '한결같은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한 사람이 길에서 발견되어, 일터를 얻고, 병상에서 돌봄을 받고, 천국까지 동행받는 일. 그 모든 길에 헤세드가, 윤진수 목사님이, 서울역 사랑나눔부 봉사자들이 함께 있었다는 것.
그것이 헤세드의 일입니다.
■ 그리고, 여러분이 계셨습니다
이 일이 가능했던 것은 한 사람의 헌신만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다.
새벽마다 헤세드의 식탁을 함께 차려주신 서울역 사랑나눔부 봉사자분들, 로로카페에서 함께 일해주신 분들, 호스피스 비용을 위해 기도하며 후원해주신 삼일교회 식구들. 여러분이 계셨기에 유재필 형제는 끝까지 사람의 곁에 머무를 수 있었습니다.
서울역 광장에서 발견된 한 사람이 마지막 한 줌의 재가 될 때까지, 그 모든 시간을 함께 걸어주신 분들. 여러분이 곧 그의 마지막 가족이었습니다.
헤세드는 앞으로도 이 길을 계속 걸어가겠습니다. 길 위에서 발견되는 또 다른 한 사람의 곁에, 끝까지 머무르겠습니다.
"한 사람, 한 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뜨겁게 하나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입니다.
시간 속에서 우리 모두를 만나주실 것입니다."
윤진수 목사, 삼일교회
故 유재필 형제님의 명복을 빕니다.
그의 마지막 길을 따뜻하게 돌봐주신 샘물호스피스병원, 함께 걸어주신 윤진수 목사님과 서울역 사랑나눔부 봉사자들, 그리고 묵묵히 기도와 후원으로 동행해주신 삼일교회 장로님들과 성도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글·정리 | 사회복지법인 헤세드 사무국
게시일 | 2026년 5월

한 사람의 마지막 길, 끝까지 함께 걸었습니다
故 유재필(Jaepil Geoffrey You, 1970~2026) 형제 이야기
서울역 광장에서 발견된 미국 시민권자 한 분이 있었습니다.
2024년 12월의 첫 만남부터 2026년 2월의 마지막 숨까지, 헤세드와 윤진수 목사님이 함께 걸은 1년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 거리에서 식구가 된 사람
서울역 광장은 오랫동안 그의 집이었습니다.
1970년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 시민이 된 그는, 사업 실패 이후 2017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혼한 아내, 오래전 연락이 끊긴 아들. 한국에도 미국에도 그를 기다리는 가족은 없었습니다.
2022년 8월, 여권의 체류 기간이 만료되었고 그는 미등록 외국인이 되었습니다. 건강보험도, 갈 곳도 없었습니다.
그가 발견된 곳은 서울역 컵밥 나눔 자리였습니다.
■ 헤세드, 그리고 한 목사님
사회복지법인 헤세드는 매일 새벽 6시 30분 따뜻한 밥상을 차리고, 노숙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일터(로로카페)와 머물 곳(헤세드의 집)을 운영합니다.
삼일교회 서울역 사랑나눔부는 이 헤세드 사역에 15년 넘게 함께해온 자원봉사 공동체로, 서울역과 남대문, 쪽방촌에서 발이 되어 손이 되어 동행해 왔습니다.
이 사역을 가장 가까이서 이끌어 온 분이 삼일교회의 윤진수 목사님입니다.
"누군가 다시 일어나려면 가족공동체, 복음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믿고 기다려주는 거예요.
주님이 우리를 믿고 기다려주신 것처럼요."
윤 목사님이 평소 말씀하시던 사역의 마음입니다.
그분에게 노숙인은 '돕는 대상'이 아니라 '식구'였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사람을 잃지 않습니다. 한 번 만난 사람을, 그 사람이 다시 일어설 때까지, 또 일어서지 못해도 끝까지 곁에 둡니다.
2024년 12월의 어느 날, 윤 목사님은 그렇게 그를 처음 만났습니다.
■ "Lord on the Road" 길 위에서 만난 주님
로로카페(LORO CAFE)는 'Lord on the Road', 길 위의 예수님이라는 뜻입니다.
노숙인들이 다시 일터에 설 수 있도록 사회복지법인 헤세드가 운영하는 자활 카페입니다. 2021년 10월 문을 열어, 한 사람 한 사람이 다시 사회로 돌아가는 길을 열고 있습니다.
윤 목사님은 그를 로로카페로 이끌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앞치마를 둘렀습니다. 커피를 내리는 법을 배웠고, 손님에게 인사하는 법을 다시 익혔습니다. 잃어버렸던 일상이, 잃어버렸던 존엄이, 천천히 그에게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이름으로 불렀고, 그는 다시 누군가의 '식구'가 되었습니다.
■ 갑자기 찾아온 병
2026년 1월, 그는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순천향대병원에서 받은 진단은 신장암 말기. 손쓸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윤 목사님과 헤세드는 그를 샘물호스피스병원으로 옮겼습니다. 더 이상 치료할 수 없다면, 적어도 그의 마지막 시간만큼은 사람의 곁에서 보낼 수 있도록.
미등록 외국인이라 건강보험도 적용되지 않는 그를, 샘물호스피스병원은 차별 없이 따뜻하게 받아주었습니다. 의료진은 끝까지 그의 통증과 존엄을 함께 지켜주었습니다.
병상에서 그는 분명히 말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의사를 영상으로 남겼습니다. 그가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었던 존엄을, 우리는 지켰습니다.
소천 전, 유재필 형제는 모든 장례 절차를 윤진수 목사님께 위임하셨습니다.
■ 끝까지 곁을 지킨 사람
윤진수 목사님은 한 번도 그의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서울역 차가운 바닥에서 그를 처음 발견한 그 순간부터, 로로카페에서 앞치마를 두른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던 날들, 그리고 호스피스 병상에서 의식이 흐려지는 그의 손을 잡고 함께 찬송을 부르던 시간까지.
미국에서 가족조차 연락이 닿지 않을 때, 그의 곁을 지킨 사람은 윤 목사님이었습니다. 병원비, 행정 절차, 미국 대사관과의 협의, 화장 예약까지. 누구의 책임도 아닐 수 있었던 한 사람의 마지막을, 윤 목사님은 자신의 일로 끌어안았습니다.
"섬기고, 양육하고, 천국까지 동행한다."
윤 목사님이 사역의 마음을 담아 말씀하시던 이 한 문장을, 그분은 유재필 형제에게 그대로 살아내셨습니다.
한 사람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일. 그것이 환대(歡待)였습니다.
■ 2026년 2월 24일 새벽 00시 31분
그는 조용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샘물호스피스병원에서, 사람의 곁에서.
서울역 차가운 콘크리트 위가 아니라, 따뜻한 이불 속에서.
■ 그리고,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부고가 미국에 닿았을 때, 아주 어렸을 적 헤어진 뒤로 아버지를 다시 만난 적 없는 아들은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기억 속에 아버지의 모습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아들에게, 한국에서 마주한 아버지는 낯선 사람이었습니다. 서울역 노숙의 시간, 로로카페에서 앞치마를 두르던 모습, 호스피스 병상에서의 마지막 숨결까지. 아버지의 한국에서의 시간뿐 아니라, 아버지라는 사람 자체가 그에게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습니다.
아들이 한 번도 알지 못했던 아버지를 비로소 알게 해준 사람이 윤진수 목사님이었습니다.
윤 목사님은 아버지의 마지막 시간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증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가장 깊이 이해되는 사람도 윤 목사님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어떻게 발견되었고, 어떻게 다시 일어서려 했고, 마지막에 어떤 마음으로 떠났는지. 그 모든 이야기가 윤 목사님을 통해 아들에게 전해졌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장례의 모든 절차를 걸었습니다. 입관, 추모, 그리고 3월 6일 용인 평온의 숲에서의 화장까지. 아버지를 끝까지 동행한 분과, 한 번도 아버지를 알지 못했던 아들이 같은 길을 함께 걸었습니다.
아들은 처음으로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비록 아버지가 떠난 뒤였지만.
장례를 마친 뒤, 유재필 형제의 한 친족이 사회복지법인 헤세드로 3,000달러를 보내왔습니다. 직접 한국에 오지는 못했지만, 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해준 자리에 자신의 마음도 보태고 싶다는 응답이었습니다.
오래 헤어져 있던 가족의 마음이 아들의 발걸음으로, 한 친족의 후원으로, 윤 목사님의 동행 위에 마지막으로 닿았습니다.
■ 헤세드(חֶסֶד)가 믿는 것
그가 서울역에서 발견되었을 때, 세상은 그를 '미등록 외국인'이라 불렀습니다.
그가 떠난 뒤, 우리는 그를 '유재필 형제'라고 부릅니다.
헤세드(חֶסֶד)는 '한결같은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한 사람이 길에서 발견되어, 일터를 얻고, 병상에서 돌봄을 받고, 천국까지 동행받는 일. 그 모든 길에 헤세드가, 윤진수 목사님이, 서울역 사랑나눔부 봉사자들이 함께 있었다는 것.
그것이 헤세드의 일입니다.
■ 그리고, 여러분이 계셨습니다
이 일이 가능했던 것은 한 사람의 헌신만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다.
새벽마다 헤세드의 식탁을 함께 차려주신 서울역 사랑나눔부 봉사자분들, 로로카페에서 함께 일해주신 분들, 호스피스 비용을 위해 기도하며 후원해주신 삼일교회 식구들. 여러분이 계셨기에 유재필 형제는 끝까지 사람의 곁에 머무를 수 있었습니다.
서울역 광장에서 발견된 한 사람이 마지막 한 줌의 재가 될 때까지, 그 모든 시간을 함께 걸어주신 분들. 여러분이 곧 그의 마지막 가족이었습니다.
헤세드는 앞으로도 이 길을 계속 걸어가겠습니다. 길 위에서 발견되는 또 다른 한 사람의 곁에, 끝까지 머무르겠습니다.
"한 사람, 한 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뜨겁게 하나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입니다.
시간 속에서 우리 모두를 만나주실 것입니다."
윤진수 목사, 삼일교회
故 유재필 형제님의 명복을 빕니다.
그의 마지막 길을 따뜻하게 돌봐주신 샘물호스피스병원, 함께 걸어주신 윤진수 목사님과 서울역 사랑나눔부 봉사자들, 그리고 묵묵히 기도와 후원으로 동행해주신 삼일교회 장로님들과 성도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글·정리 | 사회복지법인 헤세드 사무국
게시일 | 2026년 5월